산다이바나시 #5. (180505)

푸른고래의 상상하다.

산다이바나시 #5. (180505)

박청경 | 2018. 5. 5. 20:22


  나는 이 미로에 참가할 생각이 거의 없었지만 어떤 충동적인 동기로 인해 참가를 당하고 말았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것만 같은 미로는 처음에는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참가하게 된 동기, 즉 내 앞에서 길을 알고 있는 듯이 나아가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나는 그들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그 뒤만을 쫒았기에. 그들은 나를 이 미로에 참가시킨 책임을 지고 열심히 길을 터 주었다. 막힌 길이 있으면 뚫거나, 돌아가거나. 그들도 결국 모든 길을 아는 것은 아니었기에 버벅일 때도 있었지만 일단은 나아가고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고, 나는 그들과 헤어져 혼자서 이 미로를 헤쳐나가게 되었다. 그들을 보며 많이 배우기도 했고, 또 다신 못 만나는 것도 아니니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혼자서 길을 트고 찾고 밥을 짓고 하다보니 이것이 보통 막막한 게 아니었다. 그들은 정말 아무렇지 않아보였지만, 막상 겪어보니 열심히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하고 있던 것이었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여기저기 박혀있는 낡은 확성기였다. 그들은 나를 위해서 매번 뽑아 버리고 있었던게 분명하다. 그 확성기에서는 누군지 모를, 여자인지 남자인지 사람은 맞는지 조차 구분이 안되는 목소리로 나를 채찍질했는데, 아마 이 미로를 만든 사람겠지만 취미도 참 고약하다. 

  그 확성기의 목소리는 나만을 노리고 하는 말은 아니었지만 내가 그 말하는 대상에 있음은 분명해보였다. 그 목소리는 항상 '그것 가지고 되겠어?' '좀 더 해봐' '다른 놈은 벌써 저기까지 갔어' '너 스스로 창피하지도 않니' 같은 말들을 늘 쏟아냈다. 집중해서인지 전혀 들리지 않을 때도 있었지만 엄청나게 큰 바위같은게 길을 막고있어 지쳐버렸을 때는 쿡쿡 찔려왔다. 나를 이끌어 주던 이들은 이미 이 미로를 빠져나가 도움을 청할 수도 없었고... 하지만 이 미로에 참가한 이상 끝까지 가는 수 밖에 없다. 그런 미로이기 때문에...

  이 미로를 해매다가 같은 미로를 해매던 사람을 만나게 되었고, 지칠대로 지쳤던 우리는 서로를 지탱하자면서 같이 길을 나아갔다. 막히는 길이 있어도 둘이 함께 치워냈고, 쉴때에는 서로 시시껄렁한 이야기를 하며 함께 쉬었다. 가끔은 의견 충돌로 싸우는 일도 있었지만 누가 먼저 잘못했는지는 서로가 알고 있었으므로 항상 그 잘못한 사람이 먼저 사과하면 상대는 반드시 그걸 받아주었다. 그는 나의 최고의 이해자였고, 나도 그의 최고의 이해자였길 바란다.

  그리고 어느 순간 깨달은 것은 그 확성기는 이 밀를 만든 사람이 박아놓은 게 아니라는 것이다. 이것은 앞서간 놈들의 후열 방해공작이다. 중간중간 놓여있는 보물상자에서 확성기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내 목소리를 녹음해서 박아 놓으면, 나중에 이 길을 지나는 사람이 듣게 되는 것이다. 이 미로를 만들어낸 사람도 취미는 고약하지만, 더 고약한 것은 앞서 가면서 뒤를 떨어뜨리려는 놈들이라고 깨달았다.

  어떤 충동적인 동기로, 우리는 이 미로에 참가자를 늘려버리고 말았다. 매우 당황했지만 이왕 이렇게 된 거 아무것도 모르는 그에게 이것저것 알려주었다. 그가 스스로 이 미로를 개척해 나갈 수 있을 때까지. 입이 하나 늘어난 만큼 상당히 힘들긴 했지만 결국은 그가 스스로 떠날 수 있을 때까지 같이 보낸 시간은 매우 보석같이 아름다운 추억이었다.

  그 이후는 좀 힘들었지만, 내 이해자와 서로 기대가며 잎으로 나아갔다. 겨우 둘이 합해야 한명분의 일을 하기도 했지만 적어도 뒤로 떨어지지는 않았다. 내가 이 미로를 참가하게 만든 그들도 나와 같은 심정이었음은 분명할 것이다...

  마지막에 이르러, 나는 결국 출구를 발견했고, 이 미로를 탈출해 나올 수 있었다. 

  삶이라는 미로에서.


제단어 : 확성기, 미로, 충동

시간 :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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