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과 리뷰] 어쩌면 가장 현실에 가까운 추리소설

푸른고래의 상상하다.

[빙과 리뷰] 어쩌면 가장 현실에 가까운 추리소설

박청경 | 2018. 3. 23. 12:00



  추리라는 단어는 필연적으로 살인사건을 떠올리게 만든다. 고전적으로는 코난 도일이나 에드가 앨런 포, 애거사 크리스티등의 작품들은 웬만하면 전부 피튀기는 살인사건들을 다루고 있고, 최근으로 오면 일본쪽의 히가시노 게이고나 우타노 쇼고 등으로 '살인 사건 아닌 작품은 있는' 정도의 작가들이 포진하고 있다. 이 세상에서 살인에 대해 가장 많이 생각하는 직업은 추리소설 작가라는 우스갯소리는 우스갯소리로 치부하고 넘기기엔 상당한 현실성을 띄고 있다.


  단순히 생각해보면 말도 안되는 일이다. 픽션에 현실을 들이대는 것만큼 바보같은 일도 없지만 정통 추리물에 가장 부합하는 q.e.d. 증명종료 라는 만화를 보더라도, 한 권당 2개의 에피소드가 들어있는 이 만화도 역시 대부분의 사건이 살인사건이다. 물론 살인사건이 아닌 에피소드들도 있고 훌륭한 퀄리티를 자랑하나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대부분 살인사건임은 변함이 없다. 즉 추리=살인이라는 공식은 웬만하면 들어맞는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살인사건이라는 것은 그렇게 자주 일어나는 게 아니다. 워낙에 세상이 흉흉하고 뉴스만 틀면 살인사건이 나오는 것 같다고 해도 대한민국에서는 인구 10만명중 1명 정도 꼴로 일어난다(2016년 기준). 아무리 많아졌다고 한들, 길가는 사람 아무나 잡고 "혹시 살인사건을 경험했거나 목격하신 적이 있으신가요"라고 물었을 때 "예"라고 대답할 확률이 얼마나 될까.


  그런 측면에서 볼 때 가장 현실적인 추리소설이라 부르자면 살인이 일어나지 않는 추리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면 하나의 문제에 부닥치게 된다. 추리 소설인데 살인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무엇을 추리해야하는 건가? 그 답은 다음과 같다.



"이걸 한번 보시라."


  요네자와 호노부가 집필한 고전부 시리즈의 기념비적인 첫 작품, 『빙과』. 이 작품에서는 피 한방울 조차 나오지 않는다. 살인은 물론이고, 다치는 사람도 없으며, 탐정과 범인의 경계조차 모호하다. 물론 주인공인 오레키 호타로가 탐정역을 맡고 있지만 이 주인공, 모토부터가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라면 하지 않아. 해야만 하는 일이면 간략하게'이다.


  알아서 사건을 찾아다니기는 커녕 사건이 일어날 기미만 보여도 도망치려는 궁리를 한다. 결국 이 주인공을 움직이게 만들려면 주위의 압박이 있어야 한다. 즉 매우 수동적인 안락의자 탐정이다.


  이 작품에서 추리의 대상은 말했듯 살인사건이 아니다. 단순히 문은 왜 잠겼는가? 어째서 매주 금요일마다 똑같은 책이 반납되는데 반납인이 전부 다른가? 아무 생각없이 지나칠 수 있는 사소한 의문에 대해서 추리한다. 아무일 없이 반복되는 것만 같은 일상에 왜?라는 질문을 끼워 넣으면 그 자체가 특별한 의미를 가지게 된다는 것.


  그렇다면 단순히 고등학생들이 나오고 즐겁게 얘기만 하다 끝나는가? 푸른 봄의 풍경을 즐기는 청춘을 묘사할 뿐인 작품이었으면 여기서 이 리뷰는 끝난다. 


  이 소설의 제목인 『빙과』는 동시에 작중 등장하는 고전부의 문집 이름이기도 하다. 그리고 여주인공인 치탄다 에루가 집착하고 있는 대상이기도 하다. 모든 일에 왜? 라는 질문을 붙이는 치탄다(그리고 오레키에게 떠맡기는 주범)는 자신의 외삼촌이 속해있던 고전부에 입부해, 과거에 풀지 못했던 의문을 조사한다.


  어째서 외삼촌는 어린 치탄다가 울 정도의 이야기를 해주었는가? 펑펑 우는 치탄다를 왜 달래지 않았는가? 『빙과』 제 2호에 쓰여진 외삼촌에 대한 서문은 대체 무슨 뜻인가? 외삼촌이 지었다는 『빙과』 제목의 의미는?


  소설의 클라이막스가 되어서야 그 모든 의문이 풀린다. 너무 푸르다 못해 발화해버리고만 청춘. 결코 밝은 면만 있지는 않은 청춘의 쓸쓸함을 맛있게 담아낸 소설, 『빙과』. 만약 살인만을 묘사한 추리소설에 지쳤다면, 또는 색다른 청춘소설을 읽고 싶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다만 정말로 청춘들의 방황과 고민에 대해 표현한 소설을 말한다면 같은 작가의 『보틀넥』을 추천한다. 언젠가 리뷰에서 다룰 수도 있을것이다. 안되면 말고.)

상상(詳上)리뷰/고래가 읽은 소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