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폰을 빼면

푸른고래의 상상하다.

이어폰을 빼면

박청경 | 2018. 4. 23. 19:31

  월요일 아침에는 의식했든 안했든 무언가 물건을 꼭 빼먹는다. 오늘도 그렇다. 그다지 오래 걸리지는 않을 거고 노트북이 있다는 생각에 따로 보조 배터리를 가져오지는 않은게 화근이었다. 폰은 그다지 문제가 되지는 않았지만 들고다니는 이어폰, 에어팟이 문제였다.


  에어팟은 이어폰을 쓰는 버릇에 제때제때 충전되어있지 않은 경우가 많았는데 오늘이 바로 그런 경우였다. 50퍼 이하의 배터리로 평소 쓰는대로 쓰다보니 집에 돌아갈 무렵에는 완벽하게 방전된 상태였다. 더군다니 비도 오고 몸은 무거워서 비틀거렸다.


  버스에서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는 에어팟을 끼고 있자니 굳이 왜 끼고 있나 싶어 빼서 집어넣었다. 그랬더니 미묘한 해방감과 함께 작은 잡음까지 들리기 시작했다. 화이트 노이즈라고 하던가, 정확한 단어는 몰라도 그런게 들리기 시작했다. 


  본래 에어팟, 이어폰의 목적이라고 하면 귀를 막는 것이다. 개인주의가 발달한 현대 사회에서는 언제 어디서나 음악을 틀기만 하면 자신만의 공간을 만들어낼 수 있는 이어폰의 비중은 상당히 커졌다. 귀를 막아 듣기 싫은 소리를 차단할 뿐만 아니라 원하는대로 튜닝까지 할 수 있는 공간이다.


  이어폰을 빼면 그런 공간은 사라져 버린다. 하지만 빼고 보면 깨닫는 것은 의외로 귀를 막을 정도의 소음은 많지 않다는 것이다. 항상 시끄러운 줄만 알았던 세상은 상당히 조용하다고 느끼게 된다. 사실 귀에다 대고 틈악을 틀어대는 그 심리적 공간이 제일 시끄러운 공간인 것이다.


  이어폰을 끼든 말든 그것은 순전히 개인의 선택이다. 쯧쯧 혀를 차며 이어폰 빼고 살으라고 꼰대처럼 강요할 생각은 엇다. 그것은 내가 매우 싫어하는 언동이기도 하니. 다만 잠시 지친 귀를 쉬어준다는 의미로 하루 정도 이어폰을 빼고 살아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거라는 말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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