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행 ] 춘천의 책과인쇄박물관은 의외로...

푸른고래의 상상하다.

[ 여행 ] 춘천의 책과인쇄박물관은 의외로...

박청경 | 2018. 3. 20. 15:35

*책과인쇄박물관과는 전혀 상관없는, 가는 길에 있던 망한 편의점이다

           


  멀었다. <알쓸신잡>에서 아무렇지 않게 방문했기에 간단하겠지 하고 만만히 봐서는 안되는 곳이었다. 가장 가까운 역인 김유정역에서 1km 넘게 떨어져 있으며 길도 대로변이 아니라 시골 마을길을 헤쳐가야하는 탓에 내가 가는 길이 맞는지 아닌지 가늠하기 어렵다. 물론 춘천여행을 기차로만 한다는 낭만에 사로잡힌 사람이 아니고서야 고속버스로 춘천까지 이동한 뒤 다른 교통수단을 이용할테니 또 다를지 모르겠지만, 일단 가장 가까운 기차역은 김유정역이고, 그 조차 1km 이상 떨어져 있다.


  

*김유정 역의 역사. 마침 눈이 쌓여있어 눈아플 정도로 반짝였다


  다행히도 가는 길 자체는 그다지 힘든 길은 아니고, 근처 풍경이 예뻐서 걷는데 지치는 느낌이 들지는 않았다. 춥기야 오질나게 추웠지만 한겨울이었기에 그런 것이고, 날씨가 좀 풀린다면 가볍게 산책한다고 생각하고 걸어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도중에 빼꼼빼꼼 카페들도 보이고(가격은 차치하고서라도).


  책과인쇄박물관에 들어서면 김영하 작가가 말했던 냄새의 충격이 바로 덮친다. 잉크의 화학 냄새가 아니라, 커피냄새다. 1층은 작은 카페식으로 (마찬가지로 가격은 차치하고서라도) 여기까지 잘도 도달했구나 하는 식의 휴식터가 되어 있었다. 오래된 잡지같은 것들도 구비되어있었지만, 일단 시선을 뺏는 것은 압도적인 금속활자다.


*눈이 부시고 목도 아프다(...)


  1층은 카페 겸 인쇄도구들, 2~3층은 인쇄물 위주의 전시가 되어있다. 인쇄도구 코너에서 잉크의 냄새가 진하게 느껴졌다. 왠지 모르게 몸 건강한 할아버지들이 "나는 아직 팔팔하다고!" 하는 느낌이 들어서 웃음도 나온다.


*아이고 할배요...


*찾아온 계기인 <알쓸신잡>은 2층에 올라가자마자 볼 수 있다


  가장 하이라이트는 물론 자신이 직접 문선을 해보는 것이다. 1층에서 대금을 내고 적절한 시간에 지정한 교실로 가면 세팅이 되어있다. 안내원이 문선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한 뒤 200자 원고지에 한 20~25자 정도의 문장을 쓰라고 한다. 최대 3줄까지 쓸 수 있으며 예쁘게 나오도록 교정도 해주므로 겁내지 않고 쓰면 된다. 


  문장 쓰는 것이 끝났다면 직접 활자를 찾아볼 차례. 많이 쓰이는 글자라면 금세 찾도록 모아놨지만 아니라면 정말 눈빠지게 찾아야한다. 한글만 되는 것도 아니고 문장부호나 별표, 동그라미, 세모등도 가능하다. 아무리 그래도 한글 문자표 정도로 많지는 않지만 의외로 많이 갖추어져있어 문장꾸미기는 어렵지 않아 보였다.


*쓸 말을 생각해 가도록 하자. 생각해내는 데 애 좀 먹었다



  활자를 전부 찾아 판에 흔들리지 않게 꽉꽉 꽂아 넣는다(아무리 해도 좀 남는다 싶으면 종이라도 구겨넣어야 한다). 그다음 잉크를 바른 롤러로 잉크를 몇번 돌려 바르고, 종이를 아주 살살 올린다. 자칫하면 종이가 비틀린채 눌려 이상하게 나온다. 그 위에 누름판을 대고 천천히 레버를 돌리다가 찍혀나올때 쯤 확 돌려주면 인쇄완료다.


*출고를 기다리는 엽서들


  마침 게임인 'Finding Paradise'에 빠져있었던 때라 그 대사를 인용했다. 좀 더 좋은 문장이 있진 않았을까 싶지만 나름대로 나쁘지 않았다. 얼마나 느낌이 다를까 싶었지만 의외로 고풍스러운 느낌이 강하게 느껴졌다. 몇십년 전 정도만 해도 현역이던 기계임에도 불구하고 느낌이 확 다른 것을 보고, 게임이나 출판업계는 그 발전 속도가 무시무시하다는 것을 확실하게 체감할 수 있었다. 


  Finding Paradise는 '구식'인 도트그래픽으로 만들어졌고, 애초에 게임제작툴이 '알피지만들기툴'이라는 아마추어 툴이다. 초고화질 그래픽과 고스펙 pc, 콘솔등을 기반으로 하는 요즘 게임에 비하면 분명 오래되었다. 그럼에도 '레트로'라는 이름은 사람들을 끌어들인다. '구식'으로 만든 Finding Paradise가 인기를 끌었듯이, 책과인쇄박물관에서의 문선이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오듯이, 기술이 발전하든 문화가 발전하든 사람은 과거의 향수를 쫓는 생물일 수밖에 없다. 책과인쇄박물관은 그런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장소임에는 틀림없다. 이미 인터넷신문이 주류였던 세대인 사람에게조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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